10월 3일 월요일까지의 근황

10월 3일 월요일 현재까지의 근황


8월 23일에 한국을 출발해서, 24일 퍼스에 도착했다. 25일에 아서영감에게 납치를 당해서 르윈비스타 9번지로 납치를 당했다.
집은 깨끗한 편이였으나, 역시 문제는 아서할배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지나친 관심이었다. 들어온 애들이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기 일상이였다.슈니츠 공장에서 5주간 일해서 그럭저럭 돈을 모았으나 방값을 내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았다.


슈니츠에서 일상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대졸취업준비자였지만, 호주에서는 길거리 흔한 애지안
노동자에 불과했음을.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가 있다고 나의 영어실력을 너무 믿었던 나는 소리를 연발했다. 또한 지금 내가 버는
돈이 한국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많아 보이는 것 뿐이지, 실제 이곳의 생활수준에 비해서는 상당히 적은 금액이었음을 실감했다.
단순히 열정과 패기만으로 돌파하기에는 남은 11개월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영어실력, 그리고 기술자격이 있어
야만 일다운 일을 할수 있음을 체감한 한달이었다.


르윈비스타 9번지에서의 생활은 단순히 비극만은 아니였다. 한달여 기간이었지만 같이 지내고 일하는 국적이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특히 국명마저 생소한 에스토니아 인들은 한국인과 비슷한 성향을 보여서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친구들 역시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약간 화끈한 성격을 가졌는데, 그네들도 징병제이기 때문에 군출신인 마르크 우브, 카스파 우스,
특히 란다 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미치광이 돼지할배와 잦은 갈등을 빚던 나는 9월 30일 금요일, 나는 퇴근과 함께 집에서 해고 노티스와
퇴거 노티스를 받았다. 약간 당황스럽긴 했지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는 듯 했다. 한달을 더 버틸 것인가 아니면 안드레 폴드
말처럼 어드벤쳐를 찾아서 떠날 것인가. 결국 다음날 집에서 나와서 퍼스로 향했다.


퍼스 역에서 내려서 백팩을 어슬렁 거리던 나는 몇주전에 프리맨틀에서 조우했던 박재환군과 광묘숙소에서 우연히 만났다. 사람좋은그 친구와 그날저녁 카지노에 가서 래피드 빅 휠로 몇시간만에 $150을 잃고 클럽에 갔다가 다른 친구들을 조우했는데 홍콩, 미국,
인도에서 온 세명은 누구도 이날밤 혼자 있을 수 없다면서 같이 하자고 해서 공짜 술도 얻어먹고 신나게 놀다가 아침에 들어왔다.

매드캣에서의 생활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20명이 넘는 돔 생활은 아수라장이지만,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끽연하며 티비를 보고
르윈비스타에서의 생활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이틀이 지나자 적응이 되었다. 이들과 이야기 하면서 내 영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절실하게 체감했기 때문에 당분간 일을 구하는 것을 보류하고 내실을 다지기로 했다.


우선 영어 튜터를 찾아 보았는데 너무 복잡하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대신 쿠엔틴과
주변에서 말해준 미드와 영화를 보면서 익숙해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지출이 필요했는데 jb hi fi 에 가서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노트북을 마련했다. 요즘 영미권 애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다운로드나 dvd가 필요했는데
아쉽게도 인터넷이 너무 느렸기 때문에 내일 주립 도서관에 가서 dvd를 빌리거나 싼 dvd 타이틀을 빌리기로 생각했다.

by pintos | 2011/10/05 11:01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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